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영향력이 큰 순으로 따져본다면 대중매체가 거의 1순위 일것이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커져 학교교육, 부모님과의 대화, 친구들과의 잡담 보다도 중요해졌다. 또한
생활에 영향을 끼쳐 생활자체를 변이시켜 우리가 TV속에서 사는 것인지 밖에서 사는 것인지 모호해졌다. TV 토크쇼, 드라마에
대한 대화가 대부분을 이루고 직접적으로 맡닿아있는 사람들, 환경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뉴스에 나오는 해설된
진실을 믿고 그것을 자신의 의견이라고 착각하며, TV에 더이상 나오지 않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곧
잊어버린다. 또한 이러한 영향력에 저항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스스로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논쟁들과 사회적 변화를 대중매체를 거치지 않고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왜곡되고 방송사의 해설이 첨부되었더라도 딱히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대중매체를
참고하게 된다. 그리고서는 위에서 말한 일체화된 경향, 대중매체의 노예화경향이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중의 경향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을 보고 절망하고 TV를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 또한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첫번째관점-TV속에 사는 것-보다 본인의 정신건강에는 더욱 해롭다. TV를
경멸하는 관점은 아직 TV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1차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만일 정말로 대중매체를 올바르게 판단한다면 이
관점을 넘어설 수 있다.
앞서말한 1차적 관점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TV를 증오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꺼린다.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쇼프로를 좋아하고 최신 유행을 삶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여긴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바보들과
어울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대중매체를 증오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내용을 사실이라 믿는 아이너리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실’은 무엇인가?
대중매체는 전체사회를 모두 보여주지 못한다. TV가 올바른 삶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TV처럼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은 많다.
TV를 싫어한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라. 모두가 TV속에 모습처럼 살아가지는 않는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고, 그들의 삶은
필요이상으로 화려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보여주기 위해 살지 않는다. 조용한 그들은 TV속에 살지도 TV를 증오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TV는 다만 TV일 뿐이다.
사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얌전한 그들의 태도덕택에 TV를 사랑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또한 TV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며 두려워하고 있다. 시끄럽고 폭력적인 TV노예들은 이미 사회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강하다. 그리고
그 강함은 TV속에 자주 보도되어 추종자들을 더욱 모으는 순환을 만들어낸다. 그 경향은 TV증오자들의 소외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더욱 강해지는 소외감을 견디지 못한 그들은 일탈행위를 저지른다. 일탈행위들은 TV에 보도되어 많은 이들에게 혐오감을
일으켜 TV노예들끼리 더욱 뭉치게 하거나 일탈행위에 반가워하는 반항아들에 의한 제 2, 제 3의 일탈행위를 부추긴다.
언제까지 침묵할 셈인가?
말할 수 없는, 이해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는 계속 침묵을 지켜야 하는가? 기업의 상업주의와 기상천외한 선동문구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단지 다양성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그들은 TV를 단지 좋아서 선택한 것인가?
옳다. 이 글은 피해망상과 편견으로 뒤범벅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얼마전까지 TV를 증오하고 저주를 퍼붓는 동안 내내 외로웠고, 침묵하고 있었던 그들이 미웠다. 내가 듣지 않은 것인지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방법? 모르겠다. 혼란스럽고 두렵다. 중요한건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좀더 크게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